Review
내면의 본능으로부터 촉발된 카오스적 공간
안민환 작가는“나를 움직이게 하는 무엇”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인간이 행동하게 되는 내적 동기를 탐색하는 작업을 보여준다. 그는 이전 작업에서 자신의 신체로부터 시작하여 후기자본주의라는 사회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욕망적 본질에 대한 비판적 작업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그 인간의 심층부를 한층 더 깊게 들여다보고자 하고 있다. 인간 행동의 동인과 관련하여 작가는 프로이드(Sigmund Freud)의 심리학적 견해를 인용한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의 행동에는 삶에 대한 본능 혹은 성에 대한 본능인 리비도(Libido)와 죽음에 대한 본능인 타나토스(Thanatos)가 기본 동기로 작용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 내면의 충동적 본능과 여기서 나타나는 인간의 행위들을 그의 작업을 통하여 고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전 작업에서는 인간의 육체 같기도 하고 돼지의 살덩어리 같기도 한 구체적 형상을 통하여 표현해 왔었는데 이번 작업의 경우에는 라텍스나 우레탄폼 재료를 사용하여 극적으로 늘어나고 부풀려진 추상적 공간을 만들어 냄으로써 작업 방식에서 커다란 변화를 보여준다. 물론 공간 속에서 추상적 이미지뿐만 아니라 게슈탈트(gestalt)로 읽힐 수 있는 형상적 이미지들을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이것은 작가가 어떤 구체적 형상을 드러내고자 하였다기 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이 인간의 본능으로부터 촉발된 욕망적 시선을 스스로 자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공간을 제시해 주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작가는 여기서 나타나는 형상들이 중첩된 선적 요소나 주름들에 의해 형상이 우연적으로 발견되도록 만들었고 동시에 일정부분 은폐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의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어떠한 힘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작업해 오면서 현실에 돌발적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행위나 태도가 이러한 인간 내부의 비형상적 에너지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안민환 작가의 작업에서 형상을 알 수 없는 파토스적(Pathos) 공간이 형상적 질서와 어느새 교차되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작가가 프로이드를 인용하여 이야기 한 바처럼 안민환 작가에게 있어서 인간의 행위라는 것은 그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충동적이고 욕망적인 내적 에너지들이 폭발적으로 분출되어 부풀려진 결과로 만들어진 일종의 그림자와 같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행위는 내적 동인이 겉으로 표출되어 드러난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작가가 공간 속에 만들어낸 추상적 이미지들은 불완전하고 기괴해 보이기까지 하며 일부 형상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이성과 합리의 구조보다는 비합리성과 우연성에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이렇게 디오니소스적 에너지가 순간순간 알 수 없는 상상과 행동을 촉발시키고 있음에 주목하면서 인간의 심층적 본질에 접근해 가고자 했던 것이다. 충동적으로 일어나는 분노의 감정이나 성적 욕망 혹은 슬픔, 두려움, 기쁨과 같은 다양한 내면의 흐름이 스스로도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적 의식의 흐름과 행위를 통해 무질서해 보이는 카오스적 공간을 드러내어 관객으로 하여금 그 배후의 실체적 세계와 만나게 하고자 한다.
사이 미술 연구소 -이승훈
Essay
수년 전부터 이어온 작업의 시작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한 구조들을 해학적으로 표현(돼지 시리즈)하면서 부터 이다. 하지만 그 작업세계는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유형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어떠한 표상에 따라가기에만 급급하였음을 느끼게 됐다.갈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예술이란 무엇인가의 문제를 가지고 뒤로 돌아가 스스로에 대해서 진실하게 지각하고자 하였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 나를 움직이게 하고 살아가게 하는가?"에 대한 내적 동기의 고민이 깊어져 혼란스러울 때 현실 속에서 한없이 나약하거나 무의미한 자신의 존재를 지각한다. 그리고 삶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흥분 할 일이 있으면 비로소 나는 자존감이 강해지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럼 그것들이 왜 나를 흥분되게 하고 존재감을 주는 것일까..?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기억에 남는 감정들을 곱씹어서 "그 당시에 나는 왜?" 라는 질문의 꼬리를 물었다. 그로 인해 무의식에 대하여 공부를 하였고 다양한 감정의 갈등들이 조금씩 정리가 되었으며 어디서부터 오는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불안정 했던 다양한 감정들을 ‘나를 움직이게 하는 무엇’ 이라는 내적 동기의 근본적 에너지로 판단을 세웠다. 이것은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말했던 무의식 속의 리비도(죽음, 폭력성)와 타나토스(성 에너지)로 직결되며 인간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내적 동인의 중요한 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한 현상과 느낌들을 작업으로 끌어내기 위해 다양한 재료들을 실험하였고, 우연성과 비정형성을 띈 표현방식에 중점을 두었다.
장르는 구분 없이 설치와 입체, 평면으로 진행하고 있으며 비정형적이고 스토리가 있는 공간에서 나의 작업 방식과 공간의 의미가 다양하게 엮일 수 있는 설치작업을 선호해왔다. 매체는 대체적으로 가변적이고 내구성이 약한 재료들을 이용 하고 라텍스의 텐션을 이용한 긴장감으로 드로잉과 다양한 실험적인 작업을 이어왔다. 또한, 아이소핑크에 열을 가해 수축하는 우연적인 과정을 통한 인간의 공허함, 그리고 나약함과의 연결성을 찾아 보았고, 반면에 우레탄폼의 부풀려지는 특성을 이용하여 북받쳐 오르는 불완전한 감정들을 불분명한 형상으로 표현하려 하였다.